잎사귀 치과에 갔을 때 처음 이미지는 약간 사랑니 빼는 공장이었다. 누워서 사랑니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저 멀리까지 길게 늘어져 누워있었다. 의사가 그 길을 지나가면서 치아를 뽁, 뽁, 뽁 뽑는 이미지였다. 최고의 공부법은 반복이라더니 역시 그렇게 하루종일 치아를 뽑아서 의사가 이 뽑는 실력이 좋은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서울에 있는 치과라 그런가 돈 냄새가 났다. 시설은 깔끔하고 밝고 포근했다. 역시 자본주의의 친절함이 최고다.

 

 그 날 나는 사랑니를 빼고 난 뒤에 연극을 보러 가야 했다. 처음 빼보는 거면서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예매를 해뒀다. 엑스레이를 찍고 보니까 사랑니가 네 개 다 있기는 한데 곧게 자라서 쉽게 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럼 이번 달 내에 다 뽑을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치위생사가 오늘 두 개를 뽑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위아래의 사랑니를 한 번에 다 빼는 것이다.

 나는 그게 될 것 같으면 또 오기 번거로우니까 그냥 양옆 네 개를 오늘 다 뽑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의사가 그럼 나는 거품 물고 기절할 거라고 했다.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게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그날은 두 개만 빼기로 했다.

 

 의연하게 눕기는 했지만, 막상 조명이 켜지니까 좀 겁이 났다. 치위생사가 마취 주사를 잇몸과 입안과 입술에 놔주었다. 왼쪽 입이 마비될 즈음에 의사가 다시 나타났다. 뽁뽁뽁 치아를 뽑으며 한 바퀴 돌아온 것 같았다. 준비됐냐고 하고 다시 한번 나에게 오늘 위아래 다 뽑는 것 맞냐고 확인했다. 나는 너무 쫄아서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그래서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러 번 확인을 한다. 내 이름이 내가 맞는지, 위아래 둘 다 뽑는 게 맞는지, 이 치아를 뽑는 게 맞는지 두들겨서 한 번 더 확인한다. 윗니는 원래 아랫니보다 뽑기 쉽다고 한다. 윗니를 기구로 꽉 움켜잡더니 의사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지고 우두둑 소리를 내며 윗 사랑니가 뽑혔다. 거의 2초밖에 안 걸렸다. 그 악력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치과의사를 하려면 악력도 좋아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아랫니를 두들겨서 이것도 빼는 것 맞지요? 라고 확인하셨다. 두 번째에는 두 번 물어보셨다. 아랫니에 조금 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한 5초 걸렸다. 그 의사의 악력으로도 한 번의 우두둑에 뽑히지 않아 한 번 더 힘을 줘서 뽑았다.

 

마취 주사 때문인지 의사가 잘 뽑아서 그런지 내 사랑니가 예쁘게 자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치위생사가 뽑은 치아들을 보여주었다. 무슨 치아가 그렇게 뿌리가 길고 튼튼하고 예쁠 수가 있는지 웬만한 다른 사람들 어금니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자부한다. 약간 감격스러울 정도였고 출산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 훌륭한 자태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뽑은 것이 좀 후회가 됐다. 아빠도 사랑니를 잘 쓰고 계시다는데, 나도 잘 관리만 하면 쓸 수 있었던 것을 괜히 뽑은 것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뻐서 가지고 가겠다고 했는데 치위생사가 뽑은 치아는 치과 밖으로 반출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언니는 외국에서 사랑니를 뽑고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던데 왜 한국에서는 환자가 가지고 갈 수 없는 걸까.? 그 사랑니 사진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사실 그 사랑니를 안 뽑아도 됐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반대쪽의 뽑지 않은 사랑니 두 개는 완전히 자라자 염증도 전혀 생기지 않고 어금니처럼 잘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쉽다.

 

그 의사 선생님 약력을 봤을 때 단국대라고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 일이라 아닐 수도 있다. 얼굴이 앳되어 보였는데 지금쯤은 그 악력을 기반으로 더욱 완벽한 사랑니의 고수가 되어계시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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